2014년 1월 22일 수요일

心의 體는 仁禮義知

심(心)의 체(體)는 인례의지(仁禮義知)

천성(天性)은 일월광명(日月光明)의 상(象)이 되는데, 천지(天地)에는 일월(日月)의 운행(運行)에 의(依)하여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시(四時)가 생(生)하고 그것이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사도(四道)가 되는 것이므로 천성(天性)에도 또한 사도(四道)의 상(象)과 같은 인례의지(仁禮義知)의 사덕(四德)이 있으며, 덕(德)은 심(心)의 체(體)이므로 사덕(四德)의 발용(發用)하는 것이 심(心)으로 되는 것이다. 역학(易學)의 원형이정(元亨利貞)에는 인례의간(仁禮義幹)의 상(象)을 말하고 지(知)를 말하지 아니하였는데, 계사(繫辭)에는 인성(人性)에 인지(仁知) 또는 예지(禮知)를 말하니, 이는 사도중(四道中)의 간(幹)이 곧 사덕중(四德中)의 지(知)가 된다 함이며, 사도중(四道中)의 정(貞)은 변통(變通)의 간(幹)이 되고 사덕중(四德中)의 지(知)는 심(心)의 발생(發生)하는 원(源)이 되고 있으므로 사도중(四道中)의 정(貞)을 그 형태(形態)로써 보면 간(幹)이 되고 그 작용(作用)으로써 보면 지(知)가 되는 것이다. 사시(四時)의 운행(運行)이라 함은 춘(春)에 생(生)하고 하(夏)에 자라고 추(秋)에 여물고 동(冬)에 갈무리하고 하는 생장성장(生長成藏)의 상(象)을 말함이오 사덕(四德)이라 함은 춘(春)에 생(生)한 것은 원(元)으로서 인(仁)의 상(象)이 되고, 하(夏)에 자라는 것은 형(亨)으로서 예(禮)의 상(象)이 되고, 추(秋)에 여무는 것은 이(利)로서 의(義)의 상(象)이 되고, 동(冬)에 갈무리하는 것은 정(貞)으로서 사(事)의 간(幹)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인(仁)이라 함은 내(內)로부터 외(外)에 현(顯)하여 선(善)의 생(生)하는 상(象)이니, 천성(天性)에 이러한 작용(作用)이 있는 것을 인(仁)이라 하는 것이오, 예(禮)라 함은 물(物)이 중회(衆會)하여 질서(秩序)가 바르고 아름답게 자라는 상(象)이니, 천성(天性)에 이러한 작용(作用)이 있는 것을 예(禮)라 하는 것이오, 의(義)라함은 물(物)이 다 자라서 양기(陽氣)가 내부(內部)에 들어가고 모든 대대(對待)가 조화(調和)되어 여무는 상(象)이니, 천성(天性)에 이러한 작용(作用)이 있는 것을 의(義)라 하는 것이오, 지(知)라 함은 양기(陽氣)가 내부(內部)에 갈무리하여 외면(外面)은 어두우되 내부(內部)가 광명(光明)하여 인(仁)의 발생(發生)하는 원(源)이 되는 상(象)이니, 천성(天性)에 이러한 작용(作用)이 있는 것을지(知)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시(四時)에는 역학(易學)의 현장원리(顯藏原理)로 되어 있는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이(理)가 있어, 춘(春)의 생(生)하는 것이 발전(發展)하여 하(夏)의 자라는 것이 되고 하(夏)의 자라는 것이 발전(發展)하여 추(秋)의 여무는 것이 되니, 생(生)하고 자라고 여물고하는 세 가지는 물(物)의 형현(形現)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삼현(三顯)이라 하고 동(冬)은 물(物)의 갈무리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일장(一藏)이라 하는 것이다. 사덕(四德)에도 또한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상(象)이 있으니, 인(仁)이 발전(發展)하여 예(禮)가되고 예(禮)가 발전(發展)하여 의(義)가되어, 인례의(仁禮義)의 삼덕(三德)은 모두 행동(行動)의 형현(形現)한 것이므로 삼현(三顯)이 되는 것이오 지(知)는 내부(內部)에 심장(深藏)되어 외면(外面)에 나타나지 아니하되 인간(人間)의 모든 행동계획(行動計劃)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일장(一藏)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덕(四德)은 춘현동장(春顯冬藏)의 상(象)으로써 보면 인(仁)과 지(知)가되고 천시지육(天施地育)의 상(象)으로써 보면 인(仁)과 예(禮)가되고 춘생추성(春生秋成)의 상(象)으로써 보면 인(仁)과 의(義)가되고 하장추수(夏長秋收)의 상(象)으로써 보면 예(禮)와 의(義)가 되는 것이다.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이(理)는 물(物)의 생장성장(生長成藏)하는 원리(原理)로 되어 현용(現用)치 아니하는 일장(一藏)이 생명(生命)의 원(源)을 축양(畜養)하여 가장 대용(大用)하는 고장(庫藏)의 임무(任務)를 다하는 것이니, 사람은 천성(天性)이 광명(光明)하고 심(心)의 관명(光明)이 만사만물(萬事萬物)에 운행(運行)하여 능(能)히 유심(幽深)을 통찰(洞察)하고 미래(未來)를 선견(先見)하고 하는 일장(一藏)의 지(知)가 있은 연후(然後)에 인(仁)이 생(生)하여 삼현(三顯)하는 인례의(仁禮義)로 되어 천성(天性)이 여무는 것이다.
 
註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이(理)
삼현일장(三顯一藏)에 대(對)한 원리(原理)는 소강절(邵康節)의 학설(學說)에서 취(取)하고 소강절(邵康節)의 학설(學說)은 팔괘(八卦)의 반역(反易)의 상(象)에서 나온 것이다.
팔괘(八卦中)에서 건곤감리(乾坤坎離) 사괘(四卦)는 반역(反易)이 없으므로 원수(原數)대로 사(四)가 되고 진(震)과 간(艮)은 반역(反易)하여 양상일괘(兩象一卦)가 되므로 일(一)이 되고 손(巽)과 태(兌)는 반역(反易)하여 양상일괘(兩象一卦)가 되므로 일(一)이 되어, 모두 (合)하여 육(六)이 되니, 체(體)가 팔(八)이오 용(用)이 육(六)이라, 팔수중(八數中)에서 육(六)이 용(用)하고 이(二)가 불용(不用)하며 육(六)과 이(二)는 삼(三)과 일(一)의 (比)가 되니 삼용일불용(三用一不用)이 곧 삼현일장(三顯一藏)이다. 천(天)의 사시(四時)에 동(冬)이 퇴장(退藏)하여 귀로(歸勞)하고 지(地)의 사방(四方)에 극지(極地)가 빙결(氷結)하여 만물(萬物)이 생육(生育)치 못하고 인신(人身)에 상하전후(上下前後)가 있는데 상하전(上下前)이 모두 홀로 운동(運動)하고 있으되 오직 배(背)는 홀로 운동(運動)치 못하니 이가 모두 삼현일장(三顯一藏)이다. 그러나 이 일장부(一藏部)는 모두 고장(庫藏)의 역(役)을 행(行)하고 있으니, 동(冬)은 명춘(明春)의 생육작용(生育作用)에 대대(對待)하여 태화(太和)한 기(氣)를 보합(保合)하는 고장(庫藏)이오 대지(大地)의 극지(極地)는 지력(地力)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을 위(爲)하여 지축(地軸)의 극(極)에 정기(精氣)를 축적(蓄積)하는 고장(庫藏)이오 배(背)는 장부(臟腑)의 주요기관(主要器官)의 계속(係屬)하는 본거(本據)가 되어 일신(一身)의 생리(生理)를 주관(主管)하는 고장(庫藏)이다. 사람의 일일중(一日中)의 동작(動作)과 수면(睡眠)같은 것도 대체로 사분지삼(四分之三)을 동작(動作)하고 사분지일(四分之一)을 수면(睡眠)하여 정기(精氣)를 축양(蓄養)하여 다음날의 활동(活動)에 대비(對備)하고 정력(精力)의 사용(使用)같은 것도 또한 사분지일정도(四分之一程度)의 여축(餘蓄)을 두지 아니하면 체력(用力)이 과도(過度)하여 심대(甚大)한 피로(疲勞)를 느끼는 것이니, 이가 모두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이(理)이다. 물(物)의 생생(生生)에 일장(一藏)의 고장(庫藏)이 없으면 사물(事物)의 종(終)하는 때에 본원(本源)이 고갈(枯渴)하여 다시 시(始)치 못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심(心)에는 지(知)가 일장(一藏)의 고장(庫藏)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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